김어준, 안귀령: 내란 선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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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안귀령: 내란 선동의 시작 (707이 국회에 들어간 ‘진짜’ 이유)

비상계엄령 때 국회에 들어간 특전사 707 부대, 정말 ‘내란 선동’이었을까요?

A dramatic, high-contrast image depicting military figures breaching a glass door, symbolizing a tense moment of entering a restricted area like the National Assembly.

그날 국회에 707 특전사 부대원들이 들어갔던 사건, 기억나시죠? 뉴스를 보면 마치 이들이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보여줘요. 사람들은 이 행동이 ‘내란 선동’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진짜 현실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과 많이 다를 수 있죠. 우리는 이 사건의 진짜 이유를 꼭 알아야 해요. 군인들이 겪은 억울함과 그들이 받은 명령의 진실을 파헤쳐 보려고 해요. 이 일은 단순한 뉴스로만 보면 안 되는 중요한 사건이거든요. 우리가 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해요.

1. 707 부대원들은 정말 국회를 마비시키려 했나요?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한 진짜 목적이 국회를 마비시키려는 것이었을까요? 군 지휘관이었던 김현태 전 707 특임단장의 증언을 보면 생각이 좀 달라져요. 그들은 애초에 받았던 명령이 바로 출입구를 통제하는 것이었어요. 이 자체가 내란으로 연결될 만큼 심각한 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거죠. 군인들은 그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임무에 나섰다고 해요. 그들의 첫 임무는 후문을 막는 것이었어요. 후문이 막힌 것을 확인한 후, 나머지 인원 중 일부가 정문으로 갔다고 하네요. 정문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어요.

이들은 정문에서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증언했어요. . 결국 이들은 측면의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고 해요. . 창문을 깬 이유도 설명이 있었어요. 그들은 다른 시민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죠. . 사실 그들은 국회 구조를 전혀 몰랐어요. . 그들의 목표는 그저 정문을 확보하는 것이었어요. . 즉, 국회 의원들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요. .

2. 창문을 깬 행동은 왜 필요했을까요?

군인들이 국회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매우 긴장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25명이 첫 번째로 착륙해서 움직였어요. . 이들은 걸어서 후문에 도착했다고 해요. . 후문에는 유튜브를 찍는 사람이나 기자 몇 명만 보였고, 경비원 몇 명이 나왔다고 해요. . 경비원들은 정중하게 들어오면 안 된다고 부탁하는 듯한 태도였대요. . 하지만 상황은 점점 험악해졌죠.

국회 보안 업무를 하던 사람들도 무장한 계엄군이 오는 것을 보고 너무 무서웠다고 해요. .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고 하네요. . 한 직원은 손으로 적극적으로 밀쳐내서 군인들을 밖으로 이동시켰다고 증언했어요. . 군인들은 후문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려갔다고 해요. . 문이 없어서 인터넷 연결선 같은 것을 뜯어서 손잡이를 묶었다고 해요. . 그들은 출발 전까지 오직 봉쇄 임무만 받았을 뿐, 작전 지역이 국회라는 사실도 몰랐대요. .

3. 국회 안의 분위기는 뉴스와 달랐나요?

일부 미디어는 군인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장면만 보여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 마치 군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사람들이 놀라서 대피하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실제 안의 분위기는 달랐다고 해요. 군인들이 들어왔을 때 다들 카메라를 들고 있었대요. . 어떤 사람은 “신났다”고 표현할 정도였대요. .

한동훈 대표가 있던 방에서 문을 열었다가 군인이 나오는 장면이 잡혔는데, 이게 마치 군인이 갑자기 덮친 것처럼 보였다고 해요. . 하지만 실제로는 군인들이 나오는 것을 보며 신나서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거예요. . 일부 사람들은 군인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게 군인을 무서워하는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대요. . 군인들은 오히려 시민들이 소화기를 들고 대치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어요. .

4. 군인들은 왜 억울하게 징계를 받아야 했을까요?

군인들은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의도도, 그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어요. .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심지어 몸싸움 중에도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국민을 상대로 왜 이러고 있냐”는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고 해요. . 그들은 주로 방어만 했다고 강조하죠. .

하지만 현장의 부대원들은 파손이나 분실이 많았고 다친 사람도 18명이나 나왔다고 해요. . 그럼에도 상대측이 다쳤다고 주장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군인들은 국민을 상대로 무력 행사를 했다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견뎠다고 해요. .

이런 상황에서 김현태 전 707 특임단장은 국방부로부터 파면 결정을 받았어요. . 국가에 충성한 군인들을 국가가 버렸다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죠. . 그래서 억울하게 징계받은 분들을 위해 국민들이라도 지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거예요. .

5. 국민들의 지지가 왜 중요할까요?

국가에 충성한 군인들을 국가가 외면했을 때, 국민이라도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어요. . 지금 억울하게 징계를 받은 분들을 위해 기금을 모으려는 움직임도 생기고 있죠. . 변호사 비용이나 여러 가지 비용이 필요할 테니까요. .

하지만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를 보여주는 거죠. . 참여자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되기 때문이에요. . 이 여론을 만들면 나중에 금액이 커졌을 때 더 큰 이슈가 될 수도 있어요. .

이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당연하게 누리던 자유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 과거의 아픈 경험을 가진 어른들이 다시 거리로 나와 함께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죠. .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해요. .

A simple graphic illustrating a scale balancing 'Military Duty' on one side and 'Public Opinion/Support' on the other, with an arrow pointing towards increased public support.

6. 당시의 명령 체계와 김현태 단장의 역할은 어땠나요?

계엄 선포 이후 군인들에게 내려진 지시는 복잡했어요. 한 상급자는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 지침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사람이 너무 많아 위험하니 안 된다고 김현태 단장이 명확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어요. . 오히려 김현태 단장이 유일하게 상급자의 무리한 지시를 말렸던 지휘관이었다고 해요. .

만약 김현태 단장이 현장에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상급자가 소령 지휘관에게 “150명 넘으면 안 되는데 들어갈 수 있어?”라고 물었을 때, 그 지휘관은 용감하게 “들어가겠다”고 대답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어요. . 김현태 단장이 솔직하게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반대 의견을 냈기에 그나마 상황이 통제될 수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죠. .

군인들은 절대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거나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강조되었어요. . 이들은 어떤 지시를 받아도 하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현장에서도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고 하네요. . 이런 사실들을 제대로 알려야 해요.

A photograph or illustration representing a group of soldiers standing defensively, emphasizing non-aggression towards civilians.

📌 707 특임대가 국회에 들어간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707 특임대는 애초에 출입구 통제 명령을 받았으며, 정문 인원이 많아 측면 창문을 깨고 진입했으나, 국회 마비 및 부정선거 관련 국회의원 체포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 707 특임대 김현태 단장의 증언은 무엇인가?

김현태 단장은 국회 본관 구조를 몰랐고, 본회의장 진입 의사 없이 정문 확보 임무를 수행하려 했으며, 국민을 향해 무력을 사용할 의지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1. 4 국회 진입 당시 군인들이 왜 창문을 깼는지에 대한 707 특임대 지휘관의 생생한 증언을 담았습니다. 이 자료는 단순한 정치 논쟁이 아닌, 국가 비상 상황에서 군인의 실제 임무와 고뇌를 이해하고, 억울하게 징계받은 참군인들을 지원할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1. 미디어의 왜곡과 12.4 국회 진입 상황

언론이 보여주고 싶은 대로 현실을 왜곡하며, 12.4 국회 진입 당시 707 특임대의 실제 상황과 달리 내란 선동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1.1. 미디어의 현실 왜곡과 정치적 의도

  1. 미디어의 편향성: 현재 대한민국 언론은 보여주고 싶은 대로 현실을 왜곡하여 보여주고 있다. 
  2. 한동훈 대표 관련 상황: 한동훈 대표가 방에서 기다리다 문을 열었을 때 계엄군 소대원들이 나오는 장면이 포착되었으나, 실제 내부 분위기는 미디어가 보여준 것과 달랐다. 
  3. 국회 마비 시도: 국회를 마비시키기 위해 한동훈 대표를 잡아가려 했다는 주장이 있으며, 예산 문제 등은 모두 거짓말이다. 
  4. 논리적 설명의 부재: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면 안 되며, 이는 ‘미친 짓’으로 치부된다. 

1.2. 707 특임대 지휘관의 증언과 내란죄 주장 검토

  1. 내란죄 주장에 대한 반박: 국회 창문을 깬 행위 자체가 내란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지휘관(김현태 단장)의 증언을 보면 내란으로 직결될 만큼 심각한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2. 707 특임대의 임무: 애초에 받은 명령은 출입구 통제였으며, 이 행위가 내란인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 
  3. 국회 구조 이해의 중요성: 국회 구조를 알면 상황 이해에 도움이 되며, 헬기는 운동장에 착륙했다. 
  4. 초기 진입 경로:
    1. 처음에 도착한 25명 중 일부는 후문을 막으러 갔으나, 후문이 막힌 것을 확인 후 10명은 남고 나머지 15명이 정문으로 향했다. 
    2. 정문에 사람이 너무 많아 측면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2. 707 특임대의 국회 진입 과정 및 현장 상황

707 특임대가 국회에 도착하여 후문 통제 및 정문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겪은 상황과, 시민 및 경비원들과의 대치 상황을 지휘관의 증언을 통해 상세히 설명한다.

2.1. 초기 출동 및 후문 통제

  1. 출동 인원: 총 3대의 헬기로 97명(원래 96명 계획이나 사령관 포함)이 출발했으며, 첫 번째 랜딩 인원은 25명이었다. 
  2. 초기 계획: 만약 내부 진입 계획이었다면 나머지 헬기 인원이 모일 때까지 직결하거나 신속히 이동했을 것이나, 국회에 사람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하여 24명과 함께 걸어서 이동했다. 
  3. 후문 상황:
    1. 후문에 도착했을 때 유튜브나 기자로 보이는 2~3명과 경비로 보이는 2~3명이 있었다. 
    2. 경비원들은 정중하게 들어오면 안 된다고 부탁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2.2. 보안 업무 수행 및 임무 인지

  1. 경비원들의 반응: 보안 업무를 수행 중이던 경비원들은 완전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하는 모습에 너무 무서워 아무도 대응하지 못했다. 
  2. 지휘관의 대응: 지휘관 역시 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엄군에 대한 대처가 어려웠으나, 의사당이므로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손으로 적극적으로 밀쳐내자 계엄군이 소극적으로 밖으로 이동했다. 
  3. 후문 봉쇄: 방어팀으로부터 후문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려갔으며, 문이 없어 인터넷 연결선 등을 뜯어 손잡이를 묶어 봉쇄했다. 
  4. 임무의 불명확성: 출발 전까지는 봉쇄 임무만 받았을 뿐, 대통령이 계엄 선포하기 전까지 작전 지역이 국회라는 사실이나 적이 누군지 명확히 듣지 못했다. 
  5. 정문 이동: 후문 확보 후, 12명은 남기고 나머지는 나라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며 모든 문을 잠그기로 했다. 
  6. 정문에서의 상황: 이동 중 정문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2.3. 정문에서의 대치 및 시민 저항

  1. 시민들의 항의: 시민들은 존댓말을 쓰면서도 단호하게 항의하며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2. 계엄군 지휘관의 반응: 이때 계엄군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강하게 항의하며 계엄군들을 동료했다. 
  3. 시민들의 저항과 외침:
    1. 시민들은 군인들이 폭행한다고 소리쳤고, 광주 학살 사진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죽을 수 있음을 알았지만 두려움을 놓아야 했다. 
    2. 시민들은 “부끄럽지도 않냐”고 외쳤다. 
  4. 물리적 저지: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려 하자 몸을 던져 막았으며, 지휘관 역시 21세기 국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슬프고 답답함을 느꼈다. 
  5. 안기령의 행동: 안기령은 군인 한 명을 남자 둘이 잡고 끝까지 멱살을 잡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이는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2.4. 시민 저항의 의미와 창문 파손의 이유

  1. 시민의 용기: 맨몸으로 총구를 잡고 막았던 시민의 느낌을 묻자, 이미 국회에 왔을 때부터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2. 창문 파손의 목적: 증인은 창문 유리를 깨고 들어간 것이 시민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증언했다. 
  3. 진입 경로와 불 꺼진 방:
    1. 정문에서부터 전면부 창문부터 하나씩 열어보았으며, 앞쪽 불 켜진 곳에는 TV를 보는 사람도 있었으나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 
    2. 우측편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고, 이 때문에 창문을 깼다. 
  4. 실제 진입 인원: 창문을 깨고 국회 본관으로 진입한 부대원은 최종 확인 시 16명이 넘었으며, 1명이 방해 대기하여 15명이 안으로 들어갔다. 

2.5. 진입 목적과 경비원과의 대치

  1. 국회 구조 미인지: 증인은 검찰에서 국회 본관 구조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맸다. 
  2. 실제 임무와 이동:
    1. 받은 임무는 봉쇄 및 확보였으며, 본회의장으로 들어갈 의사는 전혀 없었다. 
    2. 벽면을 타고 이동하며 왼쪽으로 가면 정문이 나올 것이라 방향을 보고 목표를 가지고 이동했다. 
  3. ‘확보’의 의미: 정문 확보는 군사적으로 정문의 통제권을 갖는다는 의미였으며, 국회의원 출입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개념은 없었다. 
  4. 경비원과의 대치: 정문으로 이동 중 국회 경비들과 대치했는데, 경비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5. 병력 후퇴 이유: 소화기를 든 경비원들의 안전과 부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일부러 뒤로 물린 것이다. 
  6. 대치 상대: 당시 대치했던 상대는 일반 경비 요원이 아니었고, 유리문 안쪽에 장애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20~30명 정도의 국회 관계자 또는 보좌관으로 추정되었다. 

3. 내부 상황 왜곡 및 정치적 해석 비판

창문을 통해 진입하는 모습과 내부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3.1. 내부 진입과 보좌진의 대응

  1. 계엄군의 진입: 깨진 유리창을 통해 계엄군들이 하나둘씩 들어섰고, 내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보좌진들이 군인 진입에 대비해 문을 막으러 가고 있었다. 
  2. 진입 후 행동: 15명이 모두 들어온 후 문을 열고 나왔으며, 카메라를 들고 군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3. 내부 분위기: 실제 내부 분위기는 군인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난 상태였으며, 카메라를 들고 군인들에게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4. 한동훈 대표 방 상황 왜곡: 한동훈 대표 방에서 문을 열었다가 계엄군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 잡혔는데, 이는 군인들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처럼 연출되었으나 실제로는 군인들이 나오는 것을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다 붙잡는 장면이었다. 

3.2. 사건의 본질과 정치적 해석 비판

  1. 정치적 핑계 비판: 예산 문제나 검사 탄핵 때문에 이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개소리이자 거짓말이다. 
  2. 국회 마비 시도: 한동훈 대표를 잡아가려 한 것은 국회를 마비시키기 위함이었으며, 부정 선거를 다 날려버리려는 의도가 있었다. 
  3. 비이성적 행태: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이는 ‘미친 자들의 행위’이다. 

3.3. 세대적 책임감과 참군인 지원 호소

  1. 민주화 경험 세대에 대한 빚: 1989년생인 발언자는 이번 일을 겪으며 당연하게 누려온 자유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과거의 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와준 선배 세대에게 빚을 졌다고 느꼈다. 
  2.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촉구국민의 힘 의원들은 탄핵안 표결에 동참해야 하며, 내란죄의 공범이 되어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4. 국회의원과의 대치 및 군인의 무력 사용 거부

계엄군이 국회 내부에서 국회의원과 대치한 상황과, 707 특임대원들이 국민을 향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 및 김현태 단장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4.1. 국회의원과의 대치 상황

  1. 군인의 2층 진입: 군인은 2층으로 진입했다가 소화기를 막고, 정책의장실 쪽 출입구를 통해 3층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2. 소화기 발사: 병력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소화기가 발사되었고, 군인들이 후퇴했다가 다시 다가오는 상황이 있었다. 
  3. 국회의원과의 조우: 12월 4일 새벽 5시 50분경, 특임단장과 약 10명의 무장 계엄군이 국회 지하 통로를 통해 본청으로 들어왔다. 
  4. 체포하지 않은 이유: 지휘관은 의원인 것을 알았기에 순간적으로 ‘아, 오시는구나’ 생각했고, 당시 국회의원을 막거나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가 없어 별다른 조치 없이 지나치게 했다. 

4.2. 군인들의 무력 사용 거부와 피해

  1. 무력 사용 의지 부재: 707 부대원 전원은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거나 무력을 사용할 의지가 전혀 없었으며,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2. 자격감과 방어: 부대원들은 ‘내가 지금 국민을 상대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자격감을 느끼며 방어만 했다
  3. 피해 규모: 이 과정에서 파손 및 분실이 많았으며, 개인 시계 24점, 선글라스 30점이 박살 났고, 다친 인원이 18명이 발생했다. 
  4. 국민에 대한 이해: 상대측(시민들)이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부대원들이 견뎌냈다. 

4.3. 김현태 단장의 역할과 징계

  1. 진입 인원 제한 시도: 대통령 지시 이후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는 지침이 있었는데, 김현태 단장은 사람이 많아 위험하니 안 된다고 명확히 이야기하며 150명 진입 가능 부분도 무리하면 안 된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2. 김현태 단장의 유일한 반대: 김현태 단장이 유일하게 당시 진입을 하지 말라고 말렸던 지휘관이었다. 
  3. 김현태 단장의 부재 시 예상: 만약 김현태 단장이 현장에 있지 않고 소령 지휘관이 있었다면, 삼성 장군이 소령에게 지시했을 때 용감하게 들어가겠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4. 김현태 단장의 역할: 김현태 단장이 현장에 있었기에 솔직하게 무리하지 말라고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5. 국방부의 결정: 내란 당시 특전사 병력을 이끌고 국회 본관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갔던 김현태 전 707 특임단장에게 국방부가 파면 결정을 내렸다

5. 참군인 지원 기금 조성 및 여론 형성

억울하게 징계받은 참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모금 계획과, 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5.1. 기금 조성 목적 및 운영 계획

  1. 기금 조성 이유: 억울하게 징계받은 분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려 하며, 변호사 비용 등 여러 비용이 발생할 것이므로 힘을 보태야 한다고 판단했다. 
  2. 국가의 배신: 국가에 충성한 군인들을 국가가 버렸으므로 국민이라도 지켜줘야 한다. 
  3. 투명한 운영 약속: 금액이나 참여자 수와 관계없이 의미가 크며, 사용 내역(변호사 비용 등)을 전부 공개하고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5.2. 여론 형성의 중요성

  1. 여론 형성 필요성: 돈을 지원하는 목적 외에도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
  2. 이슈화: 여론을 만들면 금액이 커질 경우 이것이 금방 이슈가 될 수 있다. 
  3. 감사 표현: 걱정했지만 상황이 잘 되어가고 있음에 감사함을 표했다.